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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파암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 (San Fermín Festival) – 소와 함께 달리는 아드레날린 폭발의 순간

by didhd89 2025. 9. 1.

스페인 북부 나바라(Navarra) 지방의 작은 도시 파암플로나(Pamplona)는 매년 7월이 되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다. 바로 산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ín) 때문이다. 이 축제는 단순히 지역 전통을 넘어,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글로벌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가장 잘 알려진 하이라이트는 단연 ‘소와 함께 달리기(Encierro)’다. 좁은 골목길을 질주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그 뒤를 거칠게 쫓는 수 톤짜리 투우용 소의 모습은 위험천만하면서도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그러나 산페르민 축제는 단순히 위험한 체험을 제공하는 행사만은 아니다. 종교적 기원, 지역 사회의 연대, 음악과 춤, 의식과 전통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복합 문화 행사다. 본 글에서는 산페르민 축제가 어떤 배경에서 시작되었고, 오늘날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리고 왜 세계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스페인 파암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 (San Fermín Festival) – 소와 함께 달리는 아드레날린 폭발의 순간
스페인 파암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 (San Fermín Festival) – 소와 함께 달리는 아드레날린 폭발의 순간

산페르민 축제의 기원과 역사 – 신앙과 전통이 빚어낸 문화유산

산페르민 축제의 뿌리는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이 축제는 파암플로나의 수호성인 ‘산 페르민(San Fermín)’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종교적 행사였다. 산 페르민은 3세기 무렵 기독교를 전파하다 순교한 성인으로, 그의 이름은 지금도 나바라 지역의 신앙심 깊은 이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초기의 축제는 단순한 종교 의식과 행렬 중심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투우 문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성인의 날에 맞춰 투우 경기가 열리기 시작했고, 투우용 소들을 경기장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 ‘소몰이(Encierro)’라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소를 몰기 위해 목동들과 상인들이 참여했지만, 점차 대담한 젊은이들이 소 앞에서 달리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극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20세기 초에는 이 축제가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특히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자신의 소설 《태양은 또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 1926)》에서 산페르민 축제를 묘사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 후 파암플로나는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닌 ‘전 세계 젊음과 모험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즉, 산페르민 축제는 종교적 기원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세속적 흥겨움과 모험심이 더해져 독특한 문화적 전통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소와 함께 달리기 – 공포와 짜릿함의 경계에서

산페르민 축제의 백미는 단연 소와 함께 달리기다. 매일 아침 8시, 참가자들은 파암플로나 구시가지의 좁고 구불구불한 850m 코스를 따라 질주한다. 그 뒤를 거대한 투우용 소 여섯 마리와 길잡이 황소 여섯 마리가 함께 달린다. 길은 돌로 포장되어 미끄럽고, 코너는 날카로우며, 관중의 함성은 귀를 울린다. 이 극적인 환경 속에서 참가자들은 두려움과 아드레날린이 교차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참가 조건과 준비

산페르민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특별한 자격은 필요 없지만, 만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술에 취한 사람은 참여할 수 없다. 대부분의 달림꾼들은 흰 셔츠와 바지, 빨간 목도리와 허리띠라는 전통 복장을 입는다. 이 복장은 단순한 의상 이상의 의미가 있다. 흰색은 순수와 신앙을, 붉은색은 산 페르민의 순교를 상징한다.

참가자들은 출발 전 골목에 모여 기도를 올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탄이 울리면 곧바로 긴장감 넘치는 질주가 시작된다. 순간의 판단과 순발력이 생사를 가르는 만큼, 많은 달림꾼들은 오랜 경험과 훈련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전략을 가지고 코스를 달린다.

 

위험성과 안전

소와 함께 달리기는 그 위험성으로도 악명 높다. 매년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때로는 사망자도 보고된다. 돌길에서 넘어지거나, 소의 뿔에 받히는 사고는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렇기에 현지 당국은 철저한 안전 관리와 응급 구조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지만, ‘위험’ 자체가 이 축제의 본질적 매력이라는 점에서 참가자들은 여전히 자발적으로 위험을 감수한다.

 

관람객의 열기

직접 달리기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축제를 즐길 방법은 많다.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이 건물 발코니, 가로등, 보호 펜스 위에서 달림꾼들과 소들의 질주를 지켜본다. 함성과 환호 속에서 도시는 거대한 무대로 변하고, 사람과 동물이 빚어내는 드라마틱한 장면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남긴다.

파암플로나의 9일간 – 음악, 춤, 신앙, 그리고 공동체

산페르민 축제는 단순히 소와 달리는 순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축제는 7월 6일부터 14일까지 9일간 이어지며, 파암플로나 전역이 하나의 거대한 축제 현장으로 변모한다.

 

개막식 ‘치업나소(Chupinazo)’

축제의 시작은 7월 6일 정오, 시청 광장에서 터지는 불꽃과 함께 한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하얀 셔츠는 금세 와인과 맥주로 붉게 물든다. 이 순간을 ‘치업나소(Chupinazo)’라 부르며, 축제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상징한다.

 

종교적 의식

산페르민 축제의 본질은 여전히 종교적이다. 성인의 상이 거리 행렬로 모셔지고, 신앙인들은 축제 기간 내내 기도와 예배를 드린다. ‘산로렌소 교회’에서는 성 페르민에게 바치는 미사가 열리며, 참가자들은 순례자의 마음으로 축제에 동참한다.

 

거리 공연과 전통 춤

낮에는 거리 곳곳에서 밴드와 민속 무용단이 등장해 흥겨운 분위기를 띄운다. 아이들을 위한 거대한 인형 퍼레이드, 전통 춤 ‘호타(Jota)’, 지역 특유의 관악기 연주가 이어지며,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함께 어우러진다.

 

투우 경기

매일 저녁에는 파암플로나 투우장에서 본격적인 투우 경기가 열린다. 이 경기는 스페인 투우 문화의 정수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동물권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일부는 여전히 이 장면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동물 학대 문제를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폐막 – ‘포브레 데 미(Pobre de Mí)’

축제는 7월 14일 자정, 시청 광장에서 열린 폐막식으로 막을 내린다. 수천 명의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포브레 데 미(불쌍한 나)”라는 노래를 부르며 축제의 끝을 아쉬워한다. 이 장면은 9일간의 열정과 흥분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내년을 기약하는 희망을 담고 있다.

스페인 파암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 (San Fermín Festival)
스페인 파암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 (San Fermín Festival)

 

스페인 파암플로나의 산페르민 축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 전통 문화, 공동체 정신, 그리고 인간의 모험심이 어우러진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소와 함께 달리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적 두려움과 도전 정신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종교적 의식과 공동체의 연대는 축제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오늘날 산페르민 축제는 단순한 스펙터클을 넘어, 전통과 현대, 신앙과 놀이, 위험과 환희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 축제다. 바로 이 점에서 매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파암플로나를 찾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산페르민 축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두려움과 맞서 달릴 준비가 되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많은 이들은 여전히 미소 지으며 출발선에 선다.